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문단 편집) == 여담 == * [[리얼리즘]] 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와 친분이 깊었다. 프루동 사후에 쿠르베는 2점의 프루동 초상화를 그렸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신(소설)|신]]에서는 자신이 맡은 행성에 증오와 폭력을 퍼트리는 악인으로 등장한다. * 여성해방에 대해 반대하고 오히려 급진적 여성해방자들을 차라리 감옥에 가두어버리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남녀간에는 사랑, 정념, 습관의 유대 등, 원하는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으나 진실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동료를 이루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성별의 차이는 종의 차이에 의해 동물들 사이에 생기는 것과 같은 자연적 차이를 낳는다. 따라서 나는 오늘날 여성 해방이라 불리는 것에 갈채를 보내기는커녕, 이러한 극단적이 일이 일어난다면, 차라리 여성을 가두어 버릴 것이다. - 소유란 무엇인가] 프루동의 이런 면모는 트루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서 지나가는식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저평가를 받지만 프루동이 일으킨 [[아나키즘]]은 훗날 [[스페인 내전]], [[러시아 내전]] 등에 영향을 미치기에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사상가가 아니다. 게다가 아나키즘은 [[한국 독립운동]]에도 영향력을 상당히 끼쳤는데 이 때문에 20세기 초반 식민지 조선에서는 제법 자주 언급되는 사상가였다. * 프루동 사후, 일부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노동조합운동가) [[조르주 소렐]], 소칼, 조르주 발루아 등은 [[내셔널리즘]]이라는 명분으로 [[극우]] [[왕당파]] 그룹 악시옹프랑세즈와 손잡고 극우 단체 '프루동 서클(Cercle Proudhon)'을 창설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목표는 놀랍게도 "동료 노동조합원들을 군주제 옹호자로 전향시키는 것"[* 『Mil neuf cent. Revue d'histoire intellectuelle (Cahiers Georges Sorel)』 p.51~86, "Le Cercle Proudhon ou l'impossible synthèse"] 즉, 계급적 이해관계를[* [[협동조합주의]]를 의미한다. 이는 조르주 소렐의 혁명적 [[생디칼리슴]]과 악시옹 프랑세즈의 국민통합주의, 그리고 프루동의 협동조합체제를 섞은 일종의 괴이한 혼종체제다.] 초월해 국왕과 종교라는 권위아래 지방자치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프랑스 최초의 파시스트 단체인 페소를 창립한 조르주 발루아는 자신이 악시옹프랑세즈에 속해 있을 때 활동한 프루동 서클을 가리켜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파시즘적 시도”라 회고하였다. (논문 『20세기 프랑스 우파의 정치문화 고찰』 [[http://www.homomigrans.com/Journal/hm_vol20_04.pdf|#]]) 이 '프루동 서클'은 프루동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왜곡시켰으며[* 왜곡의 주된 방식은 프루동의 글을 '선택적 읽기'하는 것이었다.(a selective reading of anarchist theorist Pierre-Joseph Proudhon) 프루동은 종교를 까면서 반기독교주의적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중 반기독교주의는 받아들이지 않고 [[반유대주의]]만 받아들이다던가 해서 그의 사상을 교묘히 바꿨고 이를 자신들의 체제에 추가하였다. 특히 프루동의 국가의 폐지와 지방자치적 연방제를 국가의 폐지라는 것을 없애고 "지방자치"만을 남겨놓고 이를 위한 초월적 존재의 군주국가 선언은 대표적인 노골적 왜곡사례로 봐도 무방하다.] 유명한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도 프루동 서클이 의도적으로 프루동의 견해를 거짓전달했다며 지적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이 새로운 단체를 위한 쉬운 표적이며, 민주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루소]]를 공격하는데 주된 기쁨을 찾는다. 지금까지 프루동이 한 것처럼 효과적으로 루소를 공격한 사람은 없었는데, '프루동 서클'은 저 사실에서 그들의 변명을 찾는다. 그러나 프루동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사회계약이론]]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프루동이 사회계약의 의무를 믿지 않는다거나 또는 엄격한 충성의 맹세인 군주제를 옹호했을 것이라고는 추론할 수 없다. >---- >[[표트르 크로포트킨|크로포트킨]] 『프루동과 왕정주의』[* Democracy is an easy mark for this new party, and it finds its chief delight in pounding the philosopher of democracy, Rousseau. Now, nobody ever pounded Rousseau as effectively as Proudhon did, and in that fact the Cercle Proudhon finds its excuse. But it is not to be inferred that, because Proudhon destroyed Rousseau's theory of the social contract, he did not believe in the advisability of a social contract, or would uphold a monarchy in exacting an oath of allegiance (Proudhon and Royalism, 1914).] * 프루동은 자신의 전기를 지어주겠다는 전기작가 미레쿠르에게 자신의 개인자료를 내어줬는데, 정작 그는 전기작가로 위장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미레쿠르는 책에서 프루동을 괴물로 묘사했는데 근대의 [[예수회]] 학자인 드 뤼박 신부는 " '전기 작가'에 대한 그(프루동)의 분노가 전적으로 정당하다"라고 말하며, "이 책은 악의적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해석들, 모욕과 진부함을 조합했다"고 평가했다. 뒤통수를 쎄게 얻어맞은 프루동은 미레쿠르가 대주교 마티유 [[추기경]]과 관련 정보를 주고 받은 것을 뒤늦게 확인하곤, 가톨릭주의와 전면전을 치르기로 결심하였고 "교회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드러낼" 150쪽의 짧은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용이 늘어나면서 결국 두꺼운 3권짜리 대작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 (De la justice dans la Révolution et dans l'Église)』를 출간하게 된다.[* 『프루동 평전』 p.377~37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